2022. 1. 5. 19:54ㆍ기타사진 ^_^
사적 제122호, 조선시대 5대 궁궐 가운데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1405년 (태종5)에 지어져 광해군 때부터 정궁으로 사용되었다. 화재로 몇 차례 증건 과정을 거쳤고 일제강점기에 변형을 거쳤다. 창경궁과 이어져 있고 , 뒤쪽에 후원이 조성되어 있다. 원래 정문인 돈화문이고 궁궐 내 금천 위에 금천교가 놓여 있다. 정전의 정문인 인정문은 양쪽의 월랑이 'ㄷ'로 감싸고 있다~
인정전앞에서 ~
종로3가역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종묘를 갈려고 길을 건넜는데 종묘가 휴관일이다 . 창덕궁을 가기 위해 걷는데 이 거리는 일반통행이고 찻집과 공방 등, 궁에 맞는 상가가 많이 차지하는 동네다 ~ 보석 판매점 앞에서 ...
야경에 불빛이 들어오면 이쁠것 같네 ~
표를 티켓팅하고 창덕궁 안으로 들어왔다 ~
소나무가 아름다운 창덕궁 ~
진선문을 통해 왕이 걸었다는 길로 들어선다 ~
창덕궁에 와도 한번도 안 들어갔던 기념품샵과 카페 '사랑' 안으로 들어갔다 . 냉장고자석을 3개 사고 연한 아메리카노를 시켜 자리에 앉았다 ~
커피잔 2개를 놓고 창덕궁을 배경으로 ~
겹벚꽃이 가장 아름다운 승화루 ~
후원 입구 앞에 청나라 풍으로 지은 승화루가 있다. 세자의 전용 도서실로 사용했다는 승화루는 선정전과 희정당이 가까이 있지만 낙선재 권역에 들어가는 전각이다. 한때 일제가 조선 왕실을 감시하기 위한 창덕궁 경찰서로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
창덕궁 낙선재 (보물 제 1764호)
궁궐의 공적 권위를 나타내는 단청 대신 사대부사의 소탈한 듯 그윽한 분위기가 가을과 잘 어울리는 낙선재이다 . 낙선재는 조선 제 24대 헌종이 13년 (1847)에 귀애하는 후궁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 궁이다 ~
헌종의 사랑과 낭만이 담긴 낙선재는 갑신정변(1884)이 일어난 후 고종이 잠시 집무실로 사용햇고, 대한제국 호아실 가족인 덕혜옹주,영친왕, 이방자 여사 등이 근대와 현대에 걸쳐 실제 실제 생활했던 궁이기도 하다. 1989년 덕혜옹주와 이방자여사를 마지막으로 조선 왕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 낙선재는 여느 궁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살지 않는 궁이 되었다 ~
낙선재의 '낙선은 선을 즐긴다'는 뜻이다. 사대부가의 형식으로 지었다지만 왕이 머무는 공간인 만큼 전각의 창틀하나도 차별화된 섬세하고 단아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창살무늬와 상량정 등 낙선재의 부분부분은 청나라 풍 양식을 들여왔다고 한다 . 안타깝게도 현종은 낙선재를 짓고 2년 만에 스물셋의 나이로 승하했다 ~
낙선재는 창덕궁의 인정전과 희정당의 전각과는 뚝 떨어진 동쪽에 잇다. 본래 이름은 낙선정으로 창경궁의 부속건물 이었다고 한다 ~
경빈의 처소였던 낙선재의 안채 겪인 석복헌이다. 헌종이 후손 없이 궁이 완공(1848년)된 1년 후 승하하자 (1849, 헌종 15년), 궁궐의 법도에 따라 경빈도 석복헌을 떠나게 된다 ~
창덕궁 후원을 가기 위해 승화루로 왔다 . 창덕궁 후원을 다녀 온후 창덕궁 관람은 다시 시작한다 ~
창덕궁 후원 관람을 다하고 왕을 가까이 보좌하기 위해 궁궐 내에 세운 관청인 궐내각사,역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선원전 일원을 돌아본다 ~
문의 색감이 참 아름답고 담벼락도 멋지다 ~
조선의 5대궁 중 가장 호려하다는 인정전, 인정전은 '어진 정치를 바탕으로 훌룡한 정치를 실현하겠다'라는 의미이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서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 접견 등 나라의 공식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
1908년 인정전 내부를 고치면서 커튼,전등 설치 등 서양식 실내장식이 도입 되었다~
청기와를 얹은 선정전은 왕이 평상시 나랏일을 보시던 편전이다. 옆에 있는 희정당으로 편전 기능이 옮겨 가면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혼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희정당은 왕의 생활공간 이었으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고 종종 국장을 위한 혼전으로 사용되면서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선정전 (보물 제814호) 선정전과 희정당은 대한제국 시기에 내부를 서양식으로 꾸몄다고 한다. 본래 이름은 '학문을 숭상하고 글을 배우고 닦도록 하자'는 숭문당이었다고 한다 ~
대조전은 창덕궁의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었으며 왕실 생활의 마지막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세자가 머물며 공부하던 성정각을 끝으로 창덕궁 관람을 마친다 . 창덕궁 구석 구석 세심하게 관람하였다. 겨울날씨 치고는 그리 춥지 않았던 오늘 참 의미 있고 즐거운 관람이었다 ~
종로3가역으로 오면서 보인 귀금석 카페. 깨끗하고 인테리어도 멋진 카페라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