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4. 15:30ㆍ기타사진 ^_^
해미읍성 - 사적 제116호, 해미는 1414년 (태종14)에 충청도 덕산으로부터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옮겨온 곳으로,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전한 1651년(효종2)까지 군사적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해미읍성은 1491년(성종22)에 축조되어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
1960년에 이 성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읍성의 표본으로 삼아 사적으로 지정하고 보수공사를 하는 한편, 성 안팎에 무질서하게 자리잡은 민가를 철거 이전시키고 종합적인 보존계획을 세웠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으며 1981년에는 성 안의 일부를 발굴한 결과 관아 터가 확인되었다 ... 정문
정문 진남문에서 바라본 전체 해미읍성 ~ 해미읍성 둘레길은 코로나로 걸어 다닐수 없네 ...
무지개 동산 ~
아직도 장미가 피어 있다 . 계절을 잃은 듯 ~
까치밥 감이 주렁주렁 많이도 달려 있다 ~
대나무숲은 자연발생된 것으로 추측되며, 바구니를 비롯한 생활용품이나 건축,농사자재 등 실생활에 다양하게 활용되었고,병영성임을 고려할 때, 방어용 목책이나 창.활 등의 군사용으로도 이용되었을 것이다 ~
정자는 일반 가옥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특별히 지은 건물이다. 청어정은 조선 성종 22년 충청도병마절도사 조숙기가 세웠던 것을 다시 복원한 것으로 조선전기 대표 학자 성현의 개인 문집 ,<허백당집>에 그 유래가 전한다.
정자의 이름인 '청허'는 잡된 생각이 없이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으로 , 이곳에 오는 이들에게 한결같은 마음가짐을 당부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초기의 해미읍성은 충청도 육군사령부 역활을 하는 충청병영성으로 최고 책임자는 병마절도사였다.조숙기가 병사로 부임하여 해미읍성을 수리하면서 소나무 숲이 우거진 뒷동산에 청하정을 지었다. 이후 이곳에 온 관리들은 청어정에서 무예를 익히거나 휴식을 취하는 둥,시를 짓고 글을 남겼다.
1494년 방문한 충청감사 조위는 청하정 주변 소나무와 멀리 보이는 바다의 풍경에 대한 시를 남겼고, 권오복의 문집 ,<수헌집>에 절도사와 수령이 일을 마치고 청허정에 모여 지은 시가 전한다. 1579년 충청병영에서 근무했던 이순신,1790년 해미로 귀양 왔던 다산 정약용도 이 청하정에 머물렀을 것이다. 1872년 <해미현지도>에는 옛터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1800년대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자리에 일본식 신사가 세워졌다가 광복 후 철거되었고,1976년 복원한 후 2011년에 다시 정비하였다 ~
소나무 군락지가 참 멋지다 ~
청하정을 계단따라 내려오니 몇개의 돌탑이 쌓여 있다 . 한계단식 얼마나 정성이 들어 갔을까 ? 소원을 빌며 ,행복과 건강을 빌며 ~
호야나무 (회화나무) - 감옥 입구에 서 있는 300년 된 나무로 이 나무의 가지에 신자들이 머리채를 묶어 매달아 고문하였였고, 그 흔적으로 철사줄이 박혀 있다 .
소나무가 멋져 동관도 빛이 난다 ~
기념품 샵에서 냉장고자석을 3개 사고 나왔는데 초가집과 감나무의 풍경이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지 감탄이다 ~
겨울풍경이지만 하늘이 이뻐서 그런지 겨울풍경도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다 ~
깃발의 종류 ~
파란하늘에 휘날리는 깃발이 멋스럽다 ~
정문 진남문 ~ 마트에서 캔커피 한잔 씩 사서 밴치에 앉아 마시고 다음 일정을 위해 버스로 돌아 왔다 ~